제17화 러시러시

러시러시


17화  러시러시

김 대리는 웃으면서 건물 입구에 서 있었다.

"박 과장님" 크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김 대리가 반갑기도 했지만 같이 실업급여를 받는 처지에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지긋지긋하던 회사를 다시 오는 것도 그리 유쾌 한일은 아니었다.

"김 대리 오랜만"

가볍게 김 대리에게 손인사를 전했다.

"박 과장님 빨리 갔다 오세요. 나오시면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드릴게요."

"그래 점심이나 하자고. 내가 순댓국 살게."

박 과장은 김 대리와 가볍게 악수한 후 건물로 들어갔다.

3달 전만 해도 매일 들락거렸던 회사였지만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건물 입구에 피켓을 든 사람들과 용역업체 사람들의 몸싸움과 소란스러움을 느끼자 익숙함이 찾아왔다.

경비용역 덩치도 박 과장에겐 가벼운 눈인사를 하더니 길을 열어주었다.

박 과장이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려 할 때 피켓을 든 사람 몇몇이 따라 들어 가려 했지만 덩치에 막혀 건물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간신히 정문을 통과한 박 과장은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라꾸라꾸 과장님 오랜만에 뵙네요."

안내데스크의 이 대리가 반갑게 박 과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별명을 들은 박 과장도 이 대리를 보고 다정하게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이 대리님, 잘 지내시죠? 회사는 여전하네요." 

고개를 돌려 정문에서 항의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 대리에게 말을 전했다.

"네, 여전하지요. 며칠 전에는 한 분이 투신할뻔했어요." 

이 대리는 손으로 천정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여전하군요. 저 어디로 가야 하나요?"

"여기 임시 출입증 받으시고 9층 청렴회의실로 가시면 돼요." 이 대리는 임시 출입증을 박 과장에게 전해주었다.

박 과장은 임시 출입증을 받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3개월 전만 해도 1년 넘게 회사에서 죽치고 살았는데 집에 한번 들어가는 게 소원이었는데..." 박 과장은 신음에 가까운 소리로 중얼거리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가 숫자판의 붉은 숫자만 바뀌면서 소리 없이 올라가자 지난 1년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빨강 숫자들이 바뀌는 것을 보자 옛 기억들이 다시 생각나기 시작했다.

박 과장의 별명이 라쿠라쿠가 된 것은 1년 전부터였다.

전산쟁이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회시에서도 유명인사가 될 정도로 회사에서 일만 했다.

사실 박 과장이 원해서 매일 밤을 새운 건 아니었다.

매일 밤 12시 박 과장이 담당하던 홈페이지가 다운되거나 빨간 점들이 나타나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외부에서 해킹을 당한 것도 아니고 고의적으로 트래픽을 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소비자들이 콜센터로 홈페이지 무섭다는 항의가 빗발치기 시작하면 박 과장의 일과가 시작되었다.

매일 밤 12시부터 김 대리와 박 과장 두 명이 회사 홈페이지 담당자로 단순 회사소개 공지사항 게시, 가끔 sns나 회사 블로그 관리 정도의 업무를 하고 있었다.

다른 여수신 팀들, 신용사업팀 들이야 돈을 만지는 곳들은 원래 힘들긴 했지만 한직 중의 한직인 홈페이지 팀은 땡보직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박 과장과 김 대리는 지옥의 1년을 보내야 했다.

밤마다 알 수 없는 버그(?) 해킹(?)때문에 매일 야근을 지속해야만 했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라꾸라꾸 과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박 과장은 라쿠라쿠과장, 김 대리는 라꾸투 대리로 불리게 되었다.

홈페이지 서버는 보안 문제로 금융 서버 방화벽 바깥 단에 따로 구축되어 있었고 IDC (Internet Data Center)도 다른 층에 따로 구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홈페이지 서버는 4층 구석에 조금만한 곳에 구성돼 있었고 박 과장과 김 대리의 라쿠라쿠 침대 2개가 전부였다.

문제가 생긴 건 1년 전 서버를 바꾼 후부터였다.

모바일 페이지를 구축하면서 트래픽 부담으로 레이드 서버를 구성하려고 서버 구입을 요청했으나 비용 문제로 회사서 승인해주지 않고 여신팀 서버 중 하나를 넘겨주었다.

소문에는 여신팀 직원 하나가 자살시도를 IDC 안에서 시도했는데 그때 물리적으로 충격이 있었는지 상태가 안 좋아서 홈페이지 팀으로 넘겼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날 이후 홈페이지가 밤마다 다운되거나 붉은색으로 보인다거나 붉은 점들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이었다.

회사 내부 모니터링에서는 나오지 않는데 밤 12시만 되면 콜센터에서 항의 전화 받기 바쁘니 담당인 박 과장과 김 대리만 죽어나가는 상황이었다.

매일 밤 박 과장과 김 대리 업무는 항의 전화가 시작되면

서버를 죽였다가 다시 켜는 게 일이였고 김 대리는 재부팅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

12시 이후 콜센터 전화가 오면 자동으로 재부팅 되게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9층이 문이 열리고 박 과장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청렴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에는 놀랍게도 감사 실장과 김 사원이 앉아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박 과장 얼굴 좋아졌네. 요즘은 잘 자서 그런가보네." 감사 실장이 실실 웃으며 인사를 했다.

박 과장은 감사 실장을 볼 때마다 뱀 같다고 생각됐지만 내색하지 않고 인사를 건넸다.

"잘 지내시죠? 실장님 김사원도 오랜만이야."

"안녕하세요. 박 과장님 요즘은 잠 좀 주무시나요?"

김 사원이 친근하게 인사를 하면서 책상에서 서류를 꺼내 놓았다.

"통장 사본 가지고 오셨죠? 저 주시고요. 아래 서류 서명해주세요." 김 사원은 서류를 박 과장에게 디밀었다.

박 과장은 바지 주머니에서 복사해온 통장사본을 김 사원에게 주고 김 사원이 내민 서류를 받아 읽어보았다.

서류는 각서였다.

회사에 다니면서 한 일에 대해서는 절대 외부 유출 하지 않으며 회사에 소송들 법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의 각서였다.

"박 과장 별거 아니고 그냥 위로금에 대한 형식적인 서류야. 음... 별거 아니니까 그냥 사인해."

박 과장이 서류를 이리저리 살펴보자

"위로금이 1억 조금 넘지 아마. 그 정도면 각서 한 장 값치곤 잘 준 것 아닌가?" 감사 실장은 실실 웃으며 이야기 했다.

박 과장은 그 웃음이 보기가 싫어 각서에 빨리 사인했다.

그러다 "1억이라고요? 뭐가요?"

"으...음 오늘 중으로 박 과장 통장으로 돈 조금 들어갈 거야. 그 동안의 고생한 거 보상받는다 생각해. 그리고 입금되는 통장 말인데 박 과장 입사 때 만든 무배당 통장 거기서 지금 준 계좌로 들어갈 거야. 그리고 무배당 통장 계좌 파기할게. 괜찮지?"

박 과장은 잠시 혼란스러웠다. 입사 때 의무적으로 만든 통장이 있긴 한 것 같았다. 회사서 주는 것이 아니고 입사 때 만든 통장을 준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갑자기 생긴 1억에 박 과장은 점점 즐거워져 어찌할 줄 몰랐다.

박 과장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청렴 회의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렸다.

로비에 내리자 사람들의 고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악덕 고리대금 사채 업자들아 배 째라. 돈 없다!"

"일본 야쿠자 일본으로 가라!" 

몇몇 사람들이 로비 안으로 침투에 성공한 것 같았다.

경비 덩치 들은 바쁘게 사람들을 잡으러 다녔고 사람들은 그럴수록 소리를 지르며 로비를 도망 다녔다.

"나도 갔다 묻어봐라. 깡패새키들아~"

결국 소리 지르던 사람들은 덩치들에게 잡혀 문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박 과장은 사람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사람들을 피하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김 대리가 웃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준대요?" 

"1억! 설마 줄까?"

김 대리는 박 과장을 잡아끌며 이야기했다.

"순댓국집 가면서 이야기해드릴게요."

"전에 여신팀 자살한다고 날리친 사람 있잖아요."

"응. 우리서버 주인 ㅋㅋ"

박 과장도 웃으며 이야기했다.

"제가 감사실 김사원하고 잘 알잖아요. 김사원한테 들었는데" 김 대리는 박 과장의 팔에 팔짱을 끼며 말했다.

"사실 자살하려고 한 게 아니라 여신팀 팀장이 하도 실적 내라고 갈구니까 신입이 칼 들고 설친 거래요. 그러다 혼자 난리 치다 손목을 그었는데 피가 서버에 들어가서 다운 된거 수리해서 우리 준거래요."

박 과장는 김 대리 이야기에 놀라며 뒷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래서? "

"그리고 과장님이랑 제가 잘린 거 홈페이지 문제가 아니라 통장 때문이래요." 

"무배당 통장?" 

"네. 그거 그 신입이 기획해서 만든 상품인데 이상하게 저하고 과장님 통장으로 돈이 들어간대요"

"무슨 말이야?"

박 과장이 가다가 갑자기 서서 김 대리를 쳐다보았다.

"홈페이지 문제가 있는 다음 날이면 꼭 저하고 과장님 통장에 만 원 이만 원 돈이 들어간대요."

"그게 말이 돼?" 

"그러니 귀신 곡할 일이죠. 도깨비 장난질도 아니고"

박 과장은 김 대리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

"사실 감사실서 알고 우리 둘 뒷조사를 계속했는데 나오는 건 없고 전산 사고는 계속 나고 그래서 저희 통장을 없애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통장 안에 있던 돈 주고요. 계좌 막으려고 오늘 사인 받은 거래요."

김 대리는 박 과장의 팔을 끌며 이야기를 계속 해나갔다.

"제 생각엔 도깨비 장난 같아요. 밤새 씨름하고 하고 나면 금은보화 주고 간 도깨비 이야기 꼭 도깨비 장난 같지 않으세요?" 김 대리는 박 과장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야기하자

"실없는 소리 말고 순댓국이나 먹자고. 나도 통장에 돈이 들어 와있으면 자네 말을 믿지."

박 과장은 김 대리를 잡아끌며 순댓국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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